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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약사(略史)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Seventh-day Adventists, 이하 재림교회)는 진리를 갈망하는 소수의 사람들로 시작하여, 불과 한 세기 반만에 전세계 1천만이 넘는 신자들과, 재림교회를 영적 고향으로 생각하는 수백만의 사람들로 구성된 세계적인 교회로 성장한 복음주의 개신교회이다.

역사적 배경

1517년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회는 "오직 성경"을 신앙의 유일한 권위와 표준으로 주장하면서도 제각기 성경에서 발견한 진리들을 중심으로 수십 종파로 분열되었다. 이렇게 각 교회들에 흩어진 성경 진리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예언적인 대사건이 19세기 초엽 기독교계에서 발생하였다. 당시에는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신약 성경에 예언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하는 종말론적 신앙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었다. 이러한 종말론적 신앙분위기를 배경으로 하여 미국에서는 이른바 밀러 운동이라는 전천년적 재림운동이 초교파적으로 전개되었으며, 지도자는 당시 침례교회 신자였던 윌리암 밀러(1782-1849)였다. 1831년부터 1844년까지 계속된 "예수 재림의 대각성" 운동은 각 교회들로부터 대대적인 호응을 얻어, 이름이 확인된 목사들만 해도 174 명이 참여하였으며, 감리교, 침례교, 회중교, 크리스챤교, 장로교, 성공회, 루터교, 화란 개혁교회, 퀘이커교 등 많은 개신교 신자들이 동참하였다.

밀러는 다니엘 8:14의 예언 연구를 근거로 1844년 10월 22일에 예수께서 재림하실 것이라고 주장하였으며, 특별히 다니엘 8장과 9장에 나타난 2300 주야에 대한 예언 해석과 역사적 성취 과정을 근거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임박성을 강조했다. 그의 예언 해석은 다니엘 7장과 계시록 13장의 1260 일(또는 마흔두 달) 예언에 대한 개신교의 전통적인 해석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개신교회는 전통적으로 다니엘 7장의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하고,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25절) 작은 뿔과, 계시록 13장의 바다에서 올라오는 "복합짐승"이 권세를 행사할 "마흔두 달"을 1260 년에 걸친 교황권의 전제적 지배로 해석하고 있었다. 따라서 윌리암 밀러의 성서예언과 재림운동은 월터 마틴이 확인하였듯이 "그 시대의 성경 예언적 추세에 의한 것이었으며 미국과 유럽의 유수한 성서학자들이 윌리암 밀러에 앞서 동일한 주장을 했었다." 그러나 결과는 대실망이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예상한 시간에 오시지 않았다.

재림교회의 탄생

실망이 남겨 놓은 문제는 첫째, 재림 운동의 역사적 경험은 한낱 미몽인가, 아니면 성서적 타당성을 가지고 있는가. 둘째, 재림운동이 성서적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면 2300 주야에 대한 예언 계산은 정확한 것인가, 아니면 다시 계산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예수께서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굳게 믿으며, 초교파적인 배경을 가지고 성경 연구를 계속한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요한계시록 11장에서 재림운동의 예언적 근거를 발견하였으며, 여러번에 걸친 진지한 성경 연구와 토론을 걸쳐 그리스도의 하늘 성소 봉사에 대한 이해와, 다니엘서에 나타난 2300 주야의 끝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는 사건이 아니라 하늘의 지성소로 들어가시는 사건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리하여 그들은 예수 재림의 임박성을 확신하면서도 재림의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다"는 사도행전 1장 7절의 신앙에 확고히 서게 되었다.

1848년에 이르러, 확고부동한 재림 신앙과 함께,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하는 참된 예배일은, 태초로부터 창조의 기념일로 제정되어 온 인류에게 복 주시는 날로 성별되었을 뿐만 아니라 십계명의 넷째 계명에 명시된 일곱째 날 즉 오늘의 토요일이 참된 안식일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초교파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던 이들은, 각 교파의 교리 중 성경적 근거가 확실한 진리들을 수용하여 중세 시대 동안 잃어버렸다가 종교개혁 이후 각 개신교회들로 흩어진 진리들을 한 교회 안으로 결집할 수 있었다.

이 무리들은 태초부터 제정된 일곱째 날인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며, 예수 재림을 확고한 소망을 가지고 기다리는 신앙 공동체를 구성하기로 결정하고, 1860년에 Seventh-day Adventists(SDA), 즉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라는 이름을 채택하였으며, 3 년 후인 1863년에 세계선교를 위한 대총회를 조직하여 1차 총회를 개최하였고, 초대 대총회장에 존 바이잉턴(John Byington, 1798-1887) 목사가 취임하였다.

주요 신조

재림교회는 마르틴 루터가 주창한 개신교 종교 개혁 사상의 핵심인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의 개혁 신앙을 근본으로 하여 철저한 성경중심의 신앙을 가르치고 실천하는 복음주의 개신교회이다. 재림교회는 어떠한 교회나 인간의 전통보다 성경을 신앙의 최고의 권위로 인정하며, 각 교회가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신앙하고 있는 교리들을 수용하고, 양심적이고 객관적인 성경 연구를 통하여 다음과 같은 교리들을 확립하였다.

  1. 1. 성경전서, 곧 구약과 신약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기록된 영감된 말씀임을 믿으며, 신앙의 유일한, 그리고 최고의 권위이며 표준임을 믿는다.
  2. 2.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의 하나님이 일체이심을 믿는다.
  3. 3. 교회의 머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는다.
  4. 4.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며,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출생하신 것과, 죄가 없으신 것과,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삼 일만에 부활하신 것과, 하늘로 승천하사 우리를 위해 중보하심을 믿는다.
  5. 5.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선물임을 믿는다.
  6. 6. 침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고, 죄에 대하여 죽고 새생활을 살겠다는 공적 신앙 고백이며, 성경대로 물에 잠기는 방식으로 행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7. 7. 십계명은 폐하거나 변경할 수 없으며, 그리스도인 생활의 표준임을 믿는다.
  8. 8. 십계명에 순종하는 것은 구원의 조건으로서가 아니라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생활에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결과임을 믿는다.
  9. 9. 십계명의 제4계명에 명시되어 있는 제7일 안식일을 창조와 구원의 기념일로 준수하는 것이 성경의 원칙임을 믿는다.
  10. 10. 성령께서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힘을 주시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도록 도와주심을 믿는다.
  11. 11.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임을 인식하고 건전한 생각을 하며 깨끗한 음식물을 섭취하여 최선의 건강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믿는다.
  12. 12. 인간의 불멸은 예수께서 재림하셔서 죽은 자들을 부활시키시고, 산 자들을 변화시키실 때 주어질 것을 믿는다.
  13. 13. 십일조와 헌금제도는 하나님의 교회를 보존하며, 복음을 세상에 전파하기 위해 제정된 성경적인 제도임을 믿는다.

세계적 교세

재림교회는 인류의 구원과 회복을 위해 선교, 교육, 출판, 건강, 구호 사업 등 다양한 분야에 봉사하여 왔으며, 전세계를 향해 조직적인 복음 사업을 전개하여 왔다. 하나님은 이 교회를 축복하셔서 불과 150 년도 채 안되는 짧은 역사 동안 세계적인 교단으로 발전하게 하셨다.

재림교회의 복음 사업은 처음에는 주로 북미에 국한되어 있었으나, 1874년 첫 선교사 앤드루스(J. N. Andrews)를 스위스에 파견한 이래, 전세계에 매우 신속히 복음을 전파하여 1998년 UN이 집계한 230 개국 중 205 개국에 복음을 전파하였다. 재림교회 세계 신자수는 1970년에 200만 명, 1990년에 600만 명, 1998년 중반에 마침내 1000만 명을 넘어서서 급성장하고 있다. 1998년 통계에 의하면 1 년에 818,754 명, 하루 2,243 명, 1 시간 93.4 명, 1 분에 1.56 명씩 재림교회에 입교하고 있으며, 이것은 매 38.54 초당 1 명씩 입교하고 있는 것을 나타낸다. 1998년 통계에 의하면 전세계 재림교회수는 44,880 개이며, 1999년 6월말 현재 신자수는 10,492,456 명이다.

한국 재림교회의 시작

재림교회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기독교가 한국 선교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904년이었다. 당시 하와이로 이민을 가던 손흥조는 5월 하순, 일본 고베 항에 하선하여 하와이로 가는 배를 기다리던 중 일행 이응현과 일본인 전도사 쿠니야 히데를 만나 성경을 배우고 6월 초순 누노비끼 폭포에서 침례를 받아 최초의 한국인 재림신자가 되었다. 다음날 이응현은 예정대로 하와이로 떠났으나 손흥조는 수속 불비로 귀국하게 되었는데, 돌아오는 뱃길에서 임기반(본명 형주, 호는 근당, 독립운동가)에게 전도하여 그도 재림신자가 되었다. 이후 이들 두 사람의 활동으로 전국에 200여 명의 재림신자가 생기게 되었다.

순안 선교 본부 설립과 서울 이전

성경에 대한 지식과 가르침에 한계를 느낀 두 사람은 쿠니야 전도사를 초청하여, 1904년 여름 쿠니야 전도사와 일본 선교부 책임자인 F. W. 필드(Field) 목사가 8월 10일과 9월 13일에 각각 내한하여 9월 30일까지 한국에 체류하면서 71 명에게 침례를 베풀고, 평안남도 지역 네 곳에 교회를 조직하였다.

그 후 1905년 미국 캔사스 출신의 W. R. 스미스(Smith) 목사가 초대 선교사로 부임하여 평안남도 순안에 선교 본부를 정하고, 본격적인 선교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후 미국에서 미미 샤펜버그(Mimi Scharffenburg), R. 럿셀(Riley Russel) 의사, C.L. 버터필드(Butterfield) 부부, H.M. 스콧트(Scott), R.C. 왕거린(Wangerin) 등 여러 선교사들이 파견되면서 한국 재림교단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1909년 11월 8일, 한국은 일본 선교지로부터 분리되어 독립 선교지가 되었고, 그 이듬해인 1910년에 교단 본부를 순안에서 서울로 이전하였다. 선교본부의 이전은 그동안 평안도 일원에 국한되었던 선교지가 이제 전국적인 범위로 확대된 것을 의미한다.

선교지역 분할과 제1회 한국연합회 총회

1910년 8월 5일, 한국선교지 총회에서 한국 선교지역을 동·서·남·중으로 4 분하여 각 지역의 선교 책임자들을 임명하였다. 1915년 4월 4-13일에 개최된 제5차 선교지 연회(年會)에서 이근억, 정문국 두 사람이 최초의 한국인 목사로서 안수를 받았다. 1917년 2월 7-14일에 개최된 6차 연회에서는 한국 교회가 대회(Mission)에서 합회(Conference)로 승격되었으며, 같은 해 2월에 한국 재림교회 최초의 고등교육 과정인 2 년제 신학과가 의명학교 안에 설치되었다. 1919년 3월에는 한국교회가 서선(西鮮) 합회, 중선 대회(Mission), 남선 대회(Mission) 등 3 개 지방 조직을 거느린 연합회(Chosen Union Mission)로 승격되었고, 5월 9-17일에 역사적인 한국연합회 제1회 총회가 개최되었다.

일제에 의한 교회 해산과 복구

제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동남 아시아를 뒤덮고, 미국 정부가 재한 선교사들에게 귀국을 권고함에 따라 재림교회 선교사들도 교단 행정을 본토인에게 이양하고 속속 귀국하였다. 이에 따라 1941년 2월 이후 한국 재림교회는 본토인들이 떠맡아 신사참배, 황국 국민의 서사, 궁성요배, 창씨 개명, 부역교단의 설립 등을 강요받았다. 결국 일제는 재림교회를 해산시키기 위해 1943년 2월 4일, 조선연합회 신구 지도층 인사 6 명을 체포하였으며, 모진 고문 끝에 최초의 한국인 교단 지도자로 선정되었던 최태현 목사가 순교하였고, 뒤를 이어 김예준, 이성의 목사도 옥고의 여독으로 사망하였다. 결국 1943년 12월 28일, 재림교회는 한국 전래 40 년만에, 본토인들이 책임을 인수한지 3년 만에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되는 비운을 맞게 되었다. 다음날인 29일에는 성결교회, 44년 5월 10일에는 침례교회가 해산되고, 나머지 교회들은 "조선혁신교단"에 통합되어 배도의 길을 강요받았다. 교회 해산 후에도 신도들은 집단적으로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여 신앙을 유지하였는데, 대표적인 것이 경기도 가평군 북면 도마치 고개 부근의 적목리 신앙 공동체(현재 가평군 향토유적지 지정)이며, 그 외에도 태백산과 지리산, 인제군 연화동, 서울 중구 을지로, 북한 지역 회양군의 하송관, 평양 근교 순안 등이 있다.

1945년 8.15 해방 후, 1945년 10월 18-28일 전국 신도 총회를 소집하여 교회를 재건하였으며, 선교사들이 입국하면서 세계교회의 신학적, 재정적, 행정적 지원에 힘입어 교회 재건 작업이 가속화 되었다. 이에 따라 1947년 6월, 조선연합회 평의원회는 한국을 북선, 중선, 남선의 3 대회로 분할하였고, 9월 1일에는 신학교와 삼육 소 · 중학교를 개학하였다.

6 · 25 동란과 구호활동

1950년 6월 25일, 갑작스런 동란으로 북한의 많은 교인들과 교회기관들을 상실하였지만, 재림교회는 이 기간동안 북한 합회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구제위원회를 조직하여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호하였다. 특히 1957년 12월 이후에는 연합회장이 책임을 맡아 교단 차원의 구호활동을 전개하였는데 재림교회 세계 본부인 대총회의 지원이 컸다. 1958년 8월 31일 이후에는 명칭을 구호봉사회로 개칭하는 한편 한미구호협정의 결과로 지정된 국내 10개 구호 단체의 하나로서 구호사업의 최일선에 나서 매해 평균 8만 명의 극빈자들을 도왔으며, 이와 같은 구호활동에 대하여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8·15 광복 기념식장에서 공익포장을 주어 치하하였다.

이 외에도 많은 신자들이 성애원, 성육원, 동성보육원 등 수십개의 고아원을 설립하여 전쟁 고아들을 돌보았으며, 그 공로로 성애원은 1963년 공익 포장을 수여받았다. 특별히 1908년 순안에서 개원된 후 1931년 서울로 이전한 서울위생병원은 1 · 4 후퇴 때 제주도 성산포로 피난하여 하루 평균 100-350 명의 전염병 환자들에게 무료 치료를 베풀었으며, 피난 수도 부산의 시급한 의료 봉사를 위해 서구 부용동에 서울 위생병원 분원을 시작하여 오늘날의 부산위생병원이 탄생하게 되었다.

1957년 서울위생병원의 루(G. H. Rue : 한국명 류제한) 박사는 이승만 대통령의 주치의로 위축되었고, 그해 가을에 위생병원은 주한 미국인과 미대사관 직원의 보건 치료병원으로 의뢰되고, 세브란스 병원과 함께 미국 입국 사증(Visa) 신청자들의 X-레이 검사 병원으로 지정되었다. 정부는 6 · 25 전후의 루 박사의 노고를 치하하여 1954년 3월 9일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수여하였다.

한국 재림교회 현황

6 · 25 이후, 활발한 선교 활동에 나선 재림교회는 1960년대 중반까지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1959년 7월 18일 서울 중랑천에서 266명, 1960년 7월 2일 같은 장소에서 합동 침례식을 거행하여 492명에게 침례를 주었다. 안면도와 같이 주민의 태반 이상이 재림교인이 된 경우도 있었고, 타교파 목회자들과 신도들이 집단 개종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리하여 한국 재림교회는 6개 지방 대회에 안식일학교 학생수가 10만을 넘어서고, 침례교인수도 3만에 육박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후 불어닥친 재정 압박과 교역자 감원 사태, 교회 지도자들의 한국인으로의 교체 등 변혁기를 거치면서 많은 교회들이 약화되고 선교활동이 위축되면서, 10만이 넘던 안식일학교 학생수가 40% 가량이나 감소하고, 이에 따라 1968년에는 남한 선교지역이 중한, 영남, 서남의 3개 대회로 축소되었다. 그러나 1970년 이후 교회는 다시 완만한 성장 추세로 돌아서면서 1971년에는 서남대회가 호남, 중서로 분리되고, 1978년에는 중한대회가 동중한, 서중한으로 확대 개편되었다. 1983년에 이르러 동중한, 서중한, 영남, 중서, 호남 순으로 자양합회 창립 총회를 개최하고, 1984년 11월, 잠실 학생 체육관에서 한국선교 80주년 기념식을 성대히 개최하였고, 1994년 9월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한국 선교 90주년 기념식을 가지면서 생명의 소중함과 인류애를 일깨우기 위해 3천 명 헌혈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이 사실은 주요 일간지에 보도되기도 하였다. 1991년 마침내 신자수가 10만을 넘어섰으며,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반 개신교회의 성장율이 정체 내지는 감소 추세로 돌아섰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신자수가 증가하고 있다. 2000년에는 대총회 주최로 기독교 사상 최초로 시작된 세계 위성전도회를 한국에 유치하는 등 활발한 선교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국 재림교회는 1999년 1월 1일 현재, 신자수 162,500 명, 지방 교회수 900여 개, 목회자수 722 명으로 나타나 있다. 재림교회는 한국 복음화를 위한 선교활동과 더불어 교육, 구호, 의료, 출판, 외국어 학원, 건강식품, 청소년 기술교육 등의 사업을 전개하고 있으며, 전국에 초등학교 10, 중학교 8, 고등학교 7, 대학교 1, 전문대학 2, 대학원 2의 교육 기관을 운영하며 교육사업에도 헌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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